정조 대왕이 우리나라의 시인 중 제일이라고 격찬하여 어제본으로도 간행되었던 ≪읍취헌유고≫. 갑자사화로 스물여섯의 나이로 요절한 시재(詩才) 박은은 친구 이행(李荇)의 노력으로 이름은 물론 시문까지 후대에 남길 수 있었다. 현전하는 160편 가운데 읍취헌 시의 정수로 꼽히는 66편의 시문을 정선하였다.